로그인 회원가입
조회 수 358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2018년 2월 25일 주일오전예배 메세지 녹취본 (서울하나로교회- 박한식목사님)


"응답 받는 기도" (마 6:1~15)


오늘 읽은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이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를 많이 하였다. 사람으로부터 경건하다 의롭다 이런 칭찬을 받는 것이 그 당시 종교 지도자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오늘날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에게 표를 더 얻으려고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칭찬을 받는 것과 같다. 그 당시 배경을 보면 종교 지도자들에게 돈을 포함해서 많은 것을 맡기다 보니 지도자들이 이익을 얻기 위해 백성들의 신뢰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당시 흔한 일이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하는데 사람 앞에서 보상 심리로 기도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 흐름속에서 기도 자체를 많이 오해를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직접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도 했다.


전체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보이지 않는다. 이런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존재로 만드셨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예배드린다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전부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그 이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고 말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기도도 다 들으시는 이 땅에 충만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사람에게 복을 주셨다. 이 복이 하나님과 기도하면서 예배드리는 것. 주일 날 이렇게 모여서 한 장소에서 그 시간에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24시간 내내 기도와 예배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자 삶이다. 구원받은 자녀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영혼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예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전부이다. 이걸 놓치면 다 놓치는것. 그러다가 다 같이 모여서 주일날 공적으로 예배를 드리는것이 축복의 누림이다. 


이런 인간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야하는데 나 중심으로 사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냥 나 중심이 아닌 죄를 범하으로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되어졌고 그 배후를 보면 사단이라는 존재에 미혹받아 이런 상태로 타락하게 된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문제 즉 근본문제인 나 죄 사단이다.


이 문제가 간단했으면 하나님이 극단적으로 특별한 방법은 안쓰셨을것이다. 너무 영원하고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법인 창 3:15 여자의 후손, 사7:14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임마누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다. 예수 그 이름의 뜻도 구원이지만 그 분이 하신 일이 그리스도의 일이다. 인간이 실패한 즉시 예언하신 것이다. 선지자와 왕들을 통해서 끝없이 예언을 하셨다. 그리고 성경대로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그분의 신성에 대해서는 자주 말을 하고 신뢰를 하나 30년 동안의 인간의 과정을 밟으신 그 분의 인성에 대해서는 잘 생각을 안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데도 실제 생활과는 관계없는 구원의 삶을 살기도 한다. 예수님이 살아오신 인성의 30년의 발자취를 잘 생각하지 않으면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면 그냥 오셔서 다 끝내면 되는데 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30년동안 살으셨는가? 굉장히 중용한 비밀이 있다.


목수의 아들로 오셔서 목수로서 사셨다. 못을 박을때 못이 잘못 휘면 하나님이시니 그냥 명령해서 못을 펴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예수님은 직접 못이 휘면 망치로 두들겨 못을 펴시고 나무를 톱으로 자르시고 땀을 흘리면서 일을 하시고 인간의 과정을 똑같이 밟으셨다. 그리고 부자가 아닌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셨다. 사53에 보면 인간의 허물과 질고와 나약함을 가지고 모든 과정을 밟으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부자로 태어났든 가난한 자로 태어났든 태어난 것은 다 똑같고 인간이 가지고있는 모든 고난과 괴로움은 다 같다. 편리함에 차이는 있어도 무거운 짐을 지고 한숨 쉬는 인생사는 다 같은 것이다. 믿음으로 어떻게 감당하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셨기 때문에 그 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중요한것이다. 어떤 과정을 겪을때 그걸 상처로 받으면 안된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환경, 배경임을 깨닫고 믿음으로 감당하는것이 쌓이면서 때가 되면 하나님이 일으키시고 복을 주신다.


성경 말씀과 함께 이런 인간적인 부분을 많이 다뤄져야 한다. 내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을 나만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 땅에 수 없이 많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큰 계획을 봐야 한다. 평생 원망해도 아무것도 해결 안된다. 쉽게 다 잘되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못된 생각이고 불신앙 그 자체이다. 


예수그리스도는 모든 문제를 다 끝내신 분이다. 내 문제 인생문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 끝냈다. 이건 승리의 개가이다. 믿음의 사람은 모든 문제가 끝났다는 결론이 나야한다. 이것이 약하고 안 믿어지면 '나'라는 걸로 결국 출발을 할수 밖에 없다.

'나'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신뢰를 할 수 있는가? 롬3장에 바울이 세밀하게 설명을 하였다. 내가 얼마나 죄악스럽고 저주스러운 존재인지를 본인이 어느정도 안다면 나를 중심으로 시작 할수가 없다. 그 자체가 죄이자 사단의 각본 속에서 사는 것이다. 결과가 혹시 안 좋을지라 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스타트 해서 다 풀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모든 문제의 끝이시다. 


오직 다락방.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신 방법도 다락방이였다.

초대교회를 보면 여기에 대한 결론이 났고 이해를 했었다. 복음에 대한 이해속에서 시스템이 갖추어졌다.  

항상 다락방을 가지시면서 집에 모여서 늘 말씀을 주셨다. 병자들 집에 가셔서 거기 사람들이 모이니 또 말씀을 주시고 들판에서도 배에서도 다락방을 하셨다. 이 시스템을 가지고 성령받은 이후에 제자들은 끝없이 전도를 하였다.


  (1) 다락방을 한다는 것은, 복음을 이해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갈보리산 언약,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언약으로 각인하고 감람산 언약과 마가다락방 언약의 중심지이다. 그들이 모이면 항상 떡을 떼고 잔을 나누면서 복음에 대하여 나누었다. 복음을 이해한 그들의 교제의 장소가 다락방이였다. 나 혼자라도 다락방을 해야한다. 첫 출발이 아주 중요하다.


  (2) 그리고 초대교회는 전도를 이해하였다.

하나님이 기뻐하심, 언약 성취, 누림, 축복의 방법은 다 전도이다. 초대교회는 핍박, 환난속에서도 핑계대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다. 전도가 그들 인생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도 살기 좋다지만 누구나 다 복음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내가 복음을 누리는 최고의 길이기도 하다. 전도하는 과정속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더 체험하고 이해하게 된다.


  (3) 다음으로 가정을 이해하였다.

언약을 각인, 뿌리, 체질시키는 장소가 바로 가정이다. 무슬림을 보면 가정안에서 그들의 율법을 완전 각인시켜서 생명 걸게 만든다. 신명기에 보면 무조건 복음의 말씀을 각인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큰 일이 아닌 이상 대부분 예수 믿는 경우가 드물다. 반면 예수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조금만 도와주면 하나님의 자녀로 든든히 자랄수있다. 이걸 아는 사람은 결혼을 위해서 기도하게 된다. 복음깨달은 사람 만나서 복음의 가정을 이루어서 후대를 위해서 생을 거는것에 대한 기도제목을 가지게 된다. 후대를 낳아서 키우는 것이 복음 확산의 방법중 하나이다. 사도바울처럼 그런 특별한 사명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무조건 책임감을 가지고 결혼해서 나 중심이 아닌 가정중심이 되는것이 정상이다. 결혼과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크다.


  (4) 또한 초대교회는 직업에 대한 이해가 정확하였다.

초대교회는 복음 전파때문에 다 직장까지 포기를 해야했던 상황에 있었다. 원하는 직업이 아니라 열리는 현장에 무조건 들어가서 헌신하였다. 경제를 정복하는 현장은 항상 내가 원하는 현장이 아닌 시대가 원하는 직업, 현장일수도 있다. 유대인들의 지금까지의 특징 중 하나는 남이 줄서는 곳이 아닌 남이 안가는 곳에 가서 일인자가 되는것이 그들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어떤 상황이 오면 열리는 곳에 무조건 뛰어드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초대교회는 그렇게 핍박을 받는 상황에서 자기가 원하는 일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는대로 무조건 들어가서 일을 하면서 세계복음화까지 하였다. 내가 하고싶은 것, 고정관념 다 벗어 버리고 살아있는 정신으로 열리는 현장에 파고 들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요셉, 다윗과도 같은 인물들은 무조건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고 어느 상황에서도 승리하였다.


  (5) 다음은 지역이해이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건설하는 현장이 바로 내가 사는 지역이다.  내가 사는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내가 쓰임받아야 한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누린 축복이다. 

다락방을 이해한 자는 이제 기도할때 역사가 일어난다


<본론> 

1.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1) 눅11:13 성령을 약속하셨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불신자들은 악령충만해야 성공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충만해야 5력을 얻을 수 있다. 


  (2) 출32:32 언약이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이 노하셔서 쓸어버리려고 하셨을때 모세가 간청한 부분이다.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모세에게 있었다. 하나님은 언약을 주시고 성취해 나가신다. 언약 속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어 가는 것이 기도이다. 


  (3) 마12:28~29 인간을 죄로 넘어트렸던 존재, 귀신 즉 강한자가 결박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 

진정한 싸움인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를 해야 든든히 설수 있다. 영적인 싸움의 현장이 기도이다. 이걸 아는 사람은 내 소원을 말하기 전에 영안을 열고 이 강한자의 세력을 먼저 꺾는다. 사단은 내가 복음의 사람인지 복음에 결론났는지 바로 안다. 


  (4) 행2:1~13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 초대교회도 약속하신 성령을 받았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행12:5~7 주의 천사가 나타난다. 중요한 응답에는 항상 주의 천사가 개입한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2. 기도자의 믿음은 어떠한가?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을 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의 대상자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보이는 존재가 아니신 전지전능한 분.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수없다. 하나님의 자녀만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다. 그리고 그 이름의 능력을 알아야 한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은 어마어마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나를 통해서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3. 기억해야 할 기도자의 자세 세 가지가 있다.

  (1) 마5:24-25 형제와 화목하라.

하나님과 나올때는 모든것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와야 한다. 불안하고 미워하고 판단하고 이기적인 생각 가운데서는 기도가 될 수가 없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은 누굴 만나고 난 후에도 하나님 앞에 거스르는건 없었는지 항상 체크하고 기도하고 나를 돌봐야한다. 나의 관습을 끝까지 붙잡고 있으면 기도가 될수가 없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 마6:33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 마7:1~5 비판하지 말라. 구원받지 못한 자는 모든것이 '나' 중심이기 때문에 비판을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구원받은 그 축복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이 다 이해가 된다. 비판하는 만큼 또 비판을 받게 된다. 쓴소리를 들으면 오히려 나를 갱신할수있는 기회로 생각하라. 기도하는 사람의 특징은 모든것이 나에게 중요한 메세지이다. 사건,만남, 비판, 욕을 들으면서 다 메세지로 삼고 나를 갱신하게 된다. 실패자들은 절대로 스스로 갱신할 수 없다. 무조건 남을 비판한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우리도 이미 이런 축복을 받았다. 나 중심의 기도가 아닌 하나님 중심, 복음 중심으로 서나가면 된다. 세계복음화, 일천만 제자, 민족복음화의 흐름을 잘 보기를 바란다. 지금 주시는 응답을 보면서 말씀 속에서 감사하면서 흐름 타다 보면 어느때가 되면 서밋의 자리에 있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한주간 승리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