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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1일 주일오전 예배 녹취본 (서울하나로교회- 박한식목사님)


구원의 확신 (요일 5:10~13)


기본 메세지는 늘 깔려 있어야 한다. 인간의 근본 문제는 무엇인가? 창 3장 문제이다. 바로 하나님 떠난 불신앙, 죄, 사단 문제이다. 이것이 인간의 전체 문제인데 그게 내 문제이고 세상의 문제이고 가문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을 풀면 여섯가지 문제로 나오고 개인마다 수백 수천의 문제가 끝 없이 나온다.
그럼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갈보리 언약을 주셨다. 갈보리 언약은 그리스도이다.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감람산 언약을 주셨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주셨다. 그리고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이 크게 임하시고 역사하셨다. 

예수님이 이미 예언을 다 하셨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 들은 바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성령으로 너희는 세례를 받을 것이다. 갈보리 언약과 감람산 마가다락방 언약은 예수님이 다 약속하신 것이다. 여기에 바로 우리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키가 여기에 다 있다. 갈보리 산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가 인생의 모든 문제에 해결임을 믿어야 한다. 하늘나라 가시기 전에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신 그 의미는 이 땅이 흑암의 나라이기 때문이고 예수님이 오신 이유, 제자들을 세우신 이유, 구원의 이유, 하나님 나라의 주역이 되라고 말씀하신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힘으로 안되기 때문에 마가 다락방에서 모든 제자들이 약속의 언약을 기다렸고 성령을 입어 현장에 나가서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말씀을 힘차게 외치었다.

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되어지고 성령이 역사하신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천명이다. 모든 소명과 사명은 여기에서 다 이루어진다. 그리스도라는 이 언약안에서 모든 천명이 나오게 된다.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세계복음화의 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밝히보이면 남는건 그리스도의 언약으로 충만해 지는 것. 그 후 소명은 따라오게 되어있다. 소명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구체적으로 나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 달란트 해야할 것 해야 할 이유 다 여기에 있다. 그래서 바로 이것 때문에 이 현장에 나를 보내셨고 이런 환경을 허락하셨다는 이유가 보이게 된다. 성령의 역사로 더 구체화된 사명이 나돈다. 실제적으로 움직여야 될 구체적인 것을 보여주신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것은 그리스도 즉 당연성이라는 결론이 나게 된다. 너무 당연해서 사람들은 잘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은 필연성. 인간의 힘으로 안되고 하나님이 역사하셔야만 하는 절대성.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모든 것을 이미 다 주셨다. 이 당연성을 바탕으로 예배가 되어진다.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 너무 당연하게 이 것이 체질화 되어있다. 우리는 원래 창3장의 존재인데 반복해서 복음을 듣는 것을 통해 이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당연성이 바탕으로 깔려야 한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리스도라는 복음으로 잣대를 대면 너무 당연한 결과가 보이게 된다. 그 후에 필연적인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당연히 성취되어 지고 요셉처럼 당연히 하나님이 함께하는 결과들이 나타난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 결과가 굉장히 특별하게 보이게 되어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 필연적인 사실 앞에 핑계가 없었다.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 필연적인 체질속에서 절대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다. 절대적이라는 것은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역사이다.

요셉이 가는 길은 노예가 아니라 언약 성취의 길이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개입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 삶이 이 당연한것에 일심, 전심이 되어지고 끝 없는 하나님의 은혜속에 지속을 할 수 밖에 없다. 지금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 집착을 한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다. 일심을 다른 말로 하면 오직이다. 이 속에서 유일성의 응답과 재창조의 기적이 벌어진다. 24시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니 25시가 되어지고 인간의 시간을 뛰어 넘는 절대적인 시간 영원이 보이게 된다. 우리가 여기에 각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뿌리가 내려지고 체질화 되어져야 한다.

한 사람을 가만히 보면 그 사람의 24시간 습관화 된 각인에 모든 문제가 있다. 삶속에서 각인 된 이것이 성령을 거스르기도 한다. 사무엘 같은 경우는 어릴 때부터 흑암이 역사할 수 없는 오직 각인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한 시대를 위한 인물로 세우셨다. 그 전에 사무엘의 어머니가 완전히 하나님께 드렸었다. 요즘 세상은 자녀를 하나님께 완전히 드린 사람을 찾기 힘들다. 말은 그러지만 그 아들은 내 자녀라는 것에 잡혀 개입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기도 한다. 한나는 자녀를 많이 낳는 시대 속에 아들 한명을 나실인으로 완전히 드렸다. 젖을 때자마자 성전에 맡겼다. 그 당시 제사장은 엘리. 그는 존경받거나 신뢰받는 제사장이 아니었다. 그런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일년에 한번 절기 때만 가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겼다. 사무엘은 사건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실에 뿌리가 계속 내려졌다. 사무엘은 엘리 때문에 시험에 든 적이 한번도 없었다. 엘리 제사장들의 아들들도 불량했으나 그들을 보고 상처받거나 시험에 들거나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는 그것만큼 큰 축복이 어디있는가. 세상이 뒤집어져도 내가 바로 서면 아무 문제 없다. 문제나 사건을 만날 때마다 나의 각인 뿌리를 제대로 체크하고 뜯어내고 갱신해야 한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생각해야 한다.


이 21가지가 삶의 기본이다. 제일 처음이 그리스도라는 복음안에서 오직이라는 답이 나와야 한다. 이 오직의 답과 유일성의 응답, 재창조의 역사가 나의 것으로 구체화 되어져야 한다. 말은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라고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진짜 오직인가? 오직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답이 나오는가?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삶이라면 나에게 유일성의 구체성이 보여야 한다. 나에게 하나님 나라의 성취는 무엇인가? 그리고 마가다락방처럼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재창조의 역사는 무엇인가? 내가 기도할 이유가 있는가? 무슨 기도를 하고있는가? 내 기도만 한다면 나에게 잡혔다는 증거이다. 세계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가?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가슴에 품은 것이다.구체적으로 기록을 해보고 기도를 해봐야 한다. 이 21가지가 내 삶의 전략, key가 되어야 한다.

엘리트들은 모두 오직이라는 부분에 구체화 되어있다. 실패하는 사람은 오직이라는 것이 없다. 자기가 좋은 것 그리고 자기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 내가 잘 되면 좋고 남이 잘 되면 싫고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만 그 오직이 없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다 집착하지만 우리는 오직으로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구체화된 나만의 전도를 발견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데 나를 통해서 복음화 하기를 원하시는데 나만의 것이 분명이 있다. 그걸 발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돌아다니면서 전도하거나 300명의 명단을 적어놓고 기도 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또는 전도자를 돕는게 나만의 전도가 될수도 있다. 이걸 발견하게 되면 나만의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 이것이 구체화 될 때에 갈보리가 전부 다구나라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에 눈이 열리고 근본으로 들어가보면 모든 문제의 배후에는 사단이 있다. 이 때 성령님의 역사와 세상 정복하는 전략이 보이고 구원받은 수준을 넘어 엘리트 최고의 자리에 섰다라는 믿음위에 설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바로 구원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구원의 확신. 구원이란 무엇인가? 이 세가지 근본 문제에서 벗어난 것이 구원이다. 불신자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문제에서 구원받는 순간 다 해방될 수 있다. 이것보다 더 큰 단어는 없다. 그래서 구원받은 축복을 잘 알려면 구원받지 못한 상태가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한다.
엡2:1-3 성경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미 영적으로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죽은 상태이다. 귀신에게 소원은 아뢸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는 하지 못한다. 구원받는 순간에 살아난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깨달은 만큼 예배가 달라진다. 구원받지 못하면 경건하게 보여도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한 종교일 뿐이다. 이걸 가장 잘 이용하는 종교가 카톨릭이다. 눈 열고 보면 천주교 신자 가운데 준비된 자들이 참 많다. 상위 일 프로가 거의 다 그 곳에 있다. 방향과 내용만 바꿔주면 중요한 사명자들로 준비된 자들이다. 우리는 사단의 뒷통수를 쳐야한다. 눈만 열면 예비된 자들이 분명 있다.

구원받지 못한 상태는 억압되고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붙잡힌 상태이다. 내 인생을 사는것 같지만 배후 세력에 잡힌 것. 엡2:2에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얼마나 불쌍한 인생인가? 이 눈이 열려야 한다. 우리는 너무 큰 축복을 시간마다 듣고 누리고 있지만 불신자들은 이 복음을 한번도 못 들은 것 때문에 영이 죽어 하나님을 향해서 갈 수도 없다. 완전 업악이 되어서 성공같지만 실제로는 실패이다. 외부에서 보면 존경받는 위치에 있지만 영적 본질은 이미 그런 상태이다. 우리가 속아서는 안된다. 영적인 상태는 너희 아비 마귀. 마음상태는 마12:25 이미 예수님께서 다 아시고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그 마음의 상태는 분란스럽고  질서가 없다. 이 사람 말하면 옳은것 같고 저 사람이 말하면 옳은 것 같고.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어느날 자기 보다 강한 사람을 만나면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모든것을 잃어버린다. 어떤 종교를 통해 정리가 되어지는 것 같고 문제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7귀신이 더 들어와서 전보다 더 변질될 수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된다. 사단에 잡힌 인생은 못 빠져 나온다. 인간의 수준으로 볼 때 대단하다 할 수 있지만 사단이 볼 때는 대단한 방법으로 넘어트리기 때문에 그 역시 불쌍하다. 육신상태는 눈에 보이는 만큼 문제가 드러난다. 

사마리아라는 현장에 그리스도의 빛이 비춰지는 일에 빌립이 쓰임 받았다. 복음전하는 사람은 오직에 결론이 났고 현장에서 오직 복음만 전해야 된다. 그러면 전도 열매가 나타나게 되어있다. 이런저런 핑계 대는 사람은 평생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 사단의 궤략은 엄청나다. 할 수만 있다면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못 듣게 한다.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해야 할 일이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계속 기도해야 한다. 빌립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마리아.성에 들어갔다. 그 당시는 사마리아에 복음을 못 전할 편견이 너무 많은 시대였다. 우리의 고정 관념이 전도를 막을수 있다는 것이다. 빌립은 들어가는 순간부터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파했고 무리가 빌립의 말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복음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곳에 들러붙었던 모든 귀신들이 이 빛에 의해서 소리를 지르며 다 도망가는 역사가 일어났다. 빛은 모든 어둠을 이렇게 들춰내 버린다. 눌린 병든 사람들이 다 해방되는 역사가 일어났고 평생 처음으로 그 곳에 엄청난 기쁨이 가득하였다. 사마리아가 복음화되는 어마어마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한 사람으로 끝나는게 아니다. 그 한 사람과 관계된 모든 사람과 가문에 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빌립이 사마리아를 살리는 주역이 되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인간이 왜 행복이 없는가? 복음을 모르면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순간 행복을 알게 되어있다.  하지만 현장에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지식적인 그리스도로만 남을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고상한 지식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그 말은 자기가 추구한 모든 지식하고 비교가 안될만큼 엄청난 지식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오직에 결론 난 바울에게 유일성의 축복을 누린 전도자로써 신약의 절반을 기록하는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났다. 이러한 정복의 역사를 이루지 못한다면 굉장히 억울한 일 아닌가. 내 삶의 틀 안에서 편안히 있는 것이 바로 내 체질이다. 복음으로 비춰보면 완전 실패의 자리이고 망할 자리이다. 복음을 통해서 면밀히 봐야한다. 환경도 영향을 주지 않을만큼 복음에 결론이 나야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핑계 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미 졌다는 의미. 싹 정리해야 한다. 우리가 받은 그리스도는 너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갈보리산에서 숨이 끊어지기 전에 하신 말씀 한마디 다 이루었다. 여기에 모든 생명을 걸어야 한다. 이때부터 모든일에 성령님이 개입하시기 시작하시고 내가 이 엄청난 복음을 받은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라는 나의 존재에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내세문제이다. 불신자들은 죽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한다. 누구든지 죽음 앞에서는 벌벌 떨 수 밖에 없다, 그 후에 어디로 가게 되는지 영혼은 아는 것이다. 구원받고 나면 생기는 특징이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된다.

그럼 구원이란 무엇인가? 과거문제, 현재문제, 미래문제 해결이고  뭐든지 끝이다. 현장에 나가서 확인만 하면 된다. 우리는 무슨 확신을 가져야 하는가? 오직 구원의 확신만 가지면 된다. 마귀의 구원받고도 구원의 확신이 없을때 타겟으로 삼고 짓 밟는다. 믿음의 자세가 아닌것은 대부분 염려라는 것으로 시작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염려 거리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염려로 인해서 믿음에 서지 못한다. 그래서 사단은 염려할 것을 계속 주면서 방해한다. 그걸 뛰어넘어야 한다 끌려가니까 실패하는 것이다.

이 염려 거리를 자세히 보면 분명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다. 그 염려 때문에 더 오직으로 가야 한다. 마귀는 염려에 잡히길 원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염려때문에 더 근본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너무 약하기 때문에 내 문제와 내 약함을 해결하지 못한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방임이 아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믿는 것이다. 문제 속에서 하나님을 더 발견하고 더 의지하는 것이다. 바울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안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들어갔다. 요셉도 얼마든지 변명을 할 수 있었지만 가야했기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다. 2018년에는 내 수준을 벗어나 언약의 여정속으로 제대로 들어가야 한다. 성경에도 보라 라합같은 인물은 평생 기생으로. 살다가 가나안 정탐꾼 세명을 만나 언약의 여정속으로 들어와 다윗의 조상이 되었다. 이 여인은 이 언약속에 들어온 것 밖에 없다. 복음 받은 자들은 여기에 긍지와 자부심이 강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기도제목은 세계 7천만 제자. 민족복음화 50만, 서울지역 10만제자. 이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이다. 이 제자를 찾는데 쓰임받도록. 하나님이 어느정도 제자를 붙일지는 모르나 저는 기도하기를 4만 제자를 허락해달라고 기도하고있다. 이 안에서 만남의 축복 또한 허락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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