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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9일 주일오전예배메세지 녹취본 (서울하나로교회 박한식목사님)

 

성령충만의 지속적인 삶”(5:1626)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우리는 계속해서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다. 성령님은 누구신가?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시는가? 성령충만이 무엇인가? 나는 성령충만을 받았는가?

오늘 오전과 오후에는 성령충만의 지속적인 삶에 대해서 말씀을 나눌려고 한다. 성령님이라고 할 때에는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의미이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영적존재로 창조하셨다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은 영혼을 주셨다는 것.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축복이다. 이 축복을 사람들이 얼마나 알까 그러나 사단과 마귀는 이 축복의 대단함을 알고 인간이 처음부터 범죄하게 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하였다. 3:6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그 원인이 바로 사단이 인간사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3:23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이것이 모든 인간의 뿌리이다. 인간이 사단에게 속은 것인데, 이것이 인간의 근본이다. 이런 근본상태가 뿌리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살아가면서 그 사람의 실제 상태가 계속 나타나는데 그 상태가 불신앙이다.

그 증거로 모든 문화 속에 불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상태이다 보니 이 영혼의 상태가 불신앙과 우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경을 알아도 율법으로 가고 기도를 많이 해도 신비주의에 빠진다. 결과는 어떠한가? 나타나는 결과는 시대마다 국가마다 가문마다 가정마다 개인마다 다 다르다. 하나님 떠난 상태, 죄에 빠진 상태, 사단에 붙잡힌 상태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상태는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해답을 주셨다. 시대마다 표현을 달랐지만 답은 하나. 인간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해결하시는 것이다. 이런 근본상태에서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되고 사실은 대부분 이런 상태의 존재도 모른다. 성경만이 밝히고 있다.

처음부터 들어온 영적인 문제로 흘러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런 체질로 살아간다. 하나님은 사람과 의논할 필요도 없이 직접 해결하셨는데 그 해결의 방법이 바로 여자의 후손이다. 이말은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사야는 임마누엘로 오신다고 표현했다. 1:21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고 구원자이시다.

베드로가 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을 하였다베들레헴에서 성경대로 태어나시고 갈릴리에서 활동하신 그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라고 할 때에는 죄 문제 해결하신 제사장,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선지자, 사단 흑암 귀신 권세를 깨트린 왕이라는 의미이다. 이 세단어가 합쳐서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 그리스도는 바로 모든 문제해결자이시다. 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예수이름으로 이 권세를 사용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다. 권세정도가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케 하는 축복 또한 주셨다.

그래서 성령충만이 가장 중요한데 이 흑암의 나라에서 승리하는 길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오셔서 충만케 하시는 것 뿐이다. 남보다 모자라고 지혜가 부족해도 아무 관계없다.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면 최고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원래 근본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어린 아이를 보면 얼마나 귀여운가? 그러나 성장하면서 이 상태는 드러나게 되어 있다. 젊을 때는 티가 안 나지만 결혼하면 확 들어난다. 나이 들수록 나오는 건 이것 밖에 없다. 가난할 때는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돈을 벌고 살만하면 드러난다. 어느 단계에 도달하려고 성실히 살 때는 모르다가 어느 위치에 올라가면 드러난다. 다윗도 평생 심부름 하고 전쟁하면서 살았는데 왕이 되고 나서 큰 실수를 하였다. 51편에 보면 다윗의 실수로 인한 회개를 볼 수 있다. 그가 고백하기를 자기가 죄 중에 태어났다고 고백한다. 철이 없을 때는 내가 남보다 앞선 것 같고 더 잘될 것 같고, 잘된것 같지만, 그 내막에는 이것이 깔려있기 때문에 결국 흑암인생,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이것을 알아야 인생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볼수 있다. 이건 인간의 힘으로 해결된 부분이 아니다. 어마어마한 흑암의 덩어리이다. 평생 사단체질이기 때문에 죽는 순간 무조건 지옥에 가야한다. 천국의 하나님의 밝은 빛 아래서 그 상태로는 있을 수가 없다. 천국 데려놔도 자기 속의 무서운 흑암덩어리 때문에 스스로 지옥에 갈수 밖에 없게 되어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인간을 구원하실려고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다. 구약에서 여자의 후손을 깨달은 사람들은 임마누엘이라는 단어를 이해했고 다 피 제사를 드렸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경대로 오셨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선포하는 순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 말씀 증거하시는데 모든 것이 회복되어지고 치유되어지고 심지어 죽은 지 3일이나 지난 나사로를 살리셨는데, 도데체 누구의 말씀이신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분은 왕이시다. 귀신이 쫓겨날 수밖에 없다. 그라사인의 5000마리 넘는 귀신군대가 붙은 한 청년을 그 마을에서 감당을 못 할 정도였다. 쇠사슬도 끊어버리는데 인간이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아 떠나라라고 명령을 하셨기 때문에 사단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

시공간을 초월하신 이 분은 분명 그리스도이시다. 도마는 예수님의 못 자국을 보지 않는 이상 믿지 못하겠다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그 손과 옆구리의 못자국을 보여주셨을 때 도마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무릎 꿇고 고백하였다. 그 후 평생을 복음을 위해서 생을 바쳤다. 이 세상의 최고의 의미 있는 인생의 출발은 언제인가? 예수가 그리스도임이 믿어지는 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날, 그 인생은 바뀐다. 여러분에게 이런 고백이 있기를 바란다.

이 복음의 메시지를 들을 때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고백이 나오게 되어있다. 지금 성령시대는 말씀을 통해서 믿어질 때 가장 큰 축복이다. 직접 보든 안보든 믿는 자는 복이 있다. 믿음이 하나님에게는 최고의 기쁨이다. 믿음으로 말씀 받고 믿음으로 순종하고 주의 종을 통해서 나에게 주신 말씀이 믿어지는 자가 복된자이다. 똑같은 자리에서 믿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닌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이고 수준인 것이다.

 

1.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순간 죄에서 해방되었다(8:2)

(1)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부산의 브니엘 고등학교 모토가 이것이다. 표어. 참 멋있는 구절이다. 성경 구절 하나만 제대로 깨달아도 복음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2) 요일3:5 - 예수께서 우리 죄를 없이 하셨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예수님 오신 목적. 죄에 묶인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자범죄가 아닌 태어날 때부터 묶여있는 그 근본 원죄를 말하는 것이다. 인류 속에서 흘러들어오는 그 원죄의 흐름 속에서는 절대 하나님을 못 만난다. 그런 상태가 하나님의 슬픔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이땅에 오셔서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셨다. 이것이 기쁜 소식, 복음이다. 짐승을 구하러 오셨다면 짐승의 모습으로 오셨을 텐데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 복음을 믿는 순간 성령님께서 오신다.

(3) 고전15:3 - 죄 때문에 죽으셨다. 바울사도는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이것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도 성찬이라는 예식을 통해 항상 기념을 한다. 포도 잔을 마시면서 우리 죄를 위해서 피 흘리신 예수님, 떡을 나누면서 우리 죄를 위해서 온몸이 찢김을 당하면서 모든 죄를 해결해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4) 1:21 - 죄에서 우리를 건지신다.

(5) 1:3 - 죄를 정결케 하신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십자가로 최고 낮아지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최고 높아지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의 진리는 십자가 안에 다 있다. 하나님의 사랑 능력 계획. 이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구원을 못 받은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는 순간 여기에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상처 두려움 나를 얽어매는 것 다 십자가에서 해결되어지는 것이고 믿음의 출발이다. 그리고 부활의 응답을 삶속에서 계속 누리게 된다.

(6) 5:24 아예 신분을 변화 시켰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 그렇다면 구원받은 성도의 죄는 무엇인가?

(1) 한마디로 말하면 불신앙이다. 안 믿어져서 실천을 안 한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가장 정상적인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어마어마한 고백을 했다. 그즉시 예수님께서 큰 축복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 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본론을 말씀하시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을 얘기하셨는데 그 때 16:22"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들어보면 참 고마운 말 아닌가. 그러나 인간입장에서 말한 것이다. 이 구속의 흐름을 믿는 믿음 속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 자기 입장에서 자기 생각으로 말한 것. 그것이 바로 불신앙이다. 우리 구원받은 성도가 쉽게 범하는 죄가 이것이다. 구원받은 믿음 안에서의 생각이 아니라 내 편리와 내 입장에서 내 기준으로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다. 합리적인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죄이다.

17:16-17에는 간질하는 아들을 데리고 온 부모의 하소연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아들을 고쳐달라고 청하였으나 제자들이 하지 못했다. 예수님이 제자 3명을 데리고 와서 보니 너무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예수님 말씀 한마디로 귀신이 떠나고 간질이 나았다

예수님이 잠시 변화산에서 기도하고 있는 사이에 산 밑에서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흐름이 아닌 내가 기도하고 내가 역사를 일으키는 그 수준이었다. 어느 일을 만나는지 내 중심은 불신앙이다. 나는 모자라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음으로 그 흐름 속에서 우리가 해야 만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26:69-74 예수님께서 분명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닭 세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기 입장에서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베드로의 말이 신실하고 믿음직스럽게 보이고 옳아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구약의 예언된 말씀을 하나하나 다 성취해나가시는데 베드로는 그 흐름이 아닌 내가 제자고 그래서 나 중심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였다. 그래서 안 맞는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가 짓는 죄가 바로 이것이다. 닭이 세 번 울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정말 사실이었구나.

그리스도의 말씀이 진실한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믿음이다. 내가 아무리 옳아도 언약의 흐름과 관계없으면 틀린 것이다. 이것을 알아야 성령충만을 지속할 수 있다. 성령충만 지속에 방해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불신앙때문이다.

문제를 통해서 베드로는 자신이 얼마나 모자란 인생이며, 흑암에 잡힌 상태임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말씀이 이렇게 중요하다. 말씀을 계속 듣고 적용하다 보면 내 체질이 보이고 내 중심이 얼마나 강팍한 인생임을 계속 깨닫게 되고 그때서야 진정한 고백이 나온다. 그때 나오는 결론이 성령충만해야겠다는 것이다.

내 머리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불신앙을 꺾으면서 믿음 안에 있는 것이 최고 복인데 하나님의 능한 손으로 붙들어달라고 기도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이 세상 적인것으로는 안 되고 내 기준으로는 절대 하나님의 기쁨이 될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걸 깨달은 사람은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하게 된다. 우리가 걸어가는 언약의 여정속에 불신앙이 방해되기 때문에 버려야한다. 성경에서도 믿음으로 아니한 모든 것을 죄라고 하였다. 그것이 깨달아져야 한다.

(2) 염려, 나태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3) 육신적 생각과 삶도 하나님 앞에서 죄.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은 무엇인가. 육체라는 체질 자체가 다 소욕을 위해서이다. 구원받지 못 했을 때에는 그것이 맞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소욕을 위해서 살 이유가 없다.  우리는 위로부터 성령으로 변화 받았기 때문에 수준이 다르다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우리의 흐름에는 잊지 말아야할 맥이 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 우리를 불러내어서 위로부터 건져내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이고 함께 하신다는 것. 그래서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말씀을 듣는다. 그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를 보게 되고 힘과 평안을 얻는다.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우리는 이런 존재가 아니다. 위로부터 온 성령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존재이다. 어떤 사람은 교회 왔을 때는 조금 은혜 받는 것 같다가 주중에는 아무 관계가 없기도 하지만 또 이 축복을 한 주간 지속하는 사람이 있다. 그 말씀의 은혜를 받고 지속하는 작은 믿음이 세상을 정복한다.

(4) 시기, 인본주의. 이것도 체질이다. 제자들도 보면 누가 큰 자인지에 대해 다투기도 했고 대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도 했다

18:1-4에 예수님은 간단하게 설명하셨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부모의 사랑만 있으면 기뻐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순수한 마음이다. 작은 행복을 누리는 것도 축복이다. 이 근본을 가지고 있어야 평생 행복을 누릴 수 있다. 1억을 가지고 있어도 만원 가치도 안될만큼 쓸데없는 인생을 살고, 그것 때문에 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만원 한 장으로 믿음에 서고 중요한 일을 하는 자도 있다. 사람의 근본이라는 것은 어떤 조건이냐는 것에 의해 행복해질 수 없다. 이 모든 시기와 인본주의는 우리와 관계없다. 싹 정리하면 더 평안해진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

4:25-32 "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5) 자아실현. 불신자들에게는 참 매력적인 것이다.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 자기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남을 업신여기는 것을 사람들은 성공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성령을 거스르는 엄청난 실수이다. 교회 안에서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 목적한 바를 이루려고 무례히 행동하는 자가 있다.

그리고 어딜 가나 빈곤한 자는 있다. 그 빈곤의 근본 해결책은 못주더라도 우리가 위로는 줄 수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장 시급한 것이 작은 돈이다. 그런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누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모른다. 자기밖에 모르고 남을 이용만 하면서 입으로만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라고 하면 얼마나 큰 죄인가?

14:21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6) 신비주의. 왜 신비주의가 나올까? 나라는 존재가 우상이 되다보니. 철저히 나 중심이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데 그런데 내 피부로 하나님을 느껴야 하고 그것을 이룰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신비주의 이다. 최면술 미신 환상 환청 환각.. 다 신비주의다. 정신세계에서 노력하는 것. 이런 부분은 성령충만 받으면 필요 없는데 성령충만을 못 받으니 자기 자신이 계속 마인드 콘트롤하려고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규모있는 삶을 살고 그렇게 세계를 정복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았다. 이 복음적인 교리만 해도 우리의 수준을 높인다. 이 말씀만 의지해도 그 말씀 자체에서 우리의 영적인 수준을 올라간다. 그런데 성령충만의 역사가 없으면 같이 함께 몰려다녀야 한다. 뜨거운 곳에 가서 뜨거운 은혜를 같이 체험하고. 그런데 떨어져 나오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그런데 만약에 이 불을 내가 늘 소유하고 있다면 어떠할까? 내가 이 불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더 이상 가르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성령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천과 만을 거느릴 수 있다. 이 한사람이 중요하다. 성령충만의 역사는 무한하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제대로 해야 한다 

이러 문제들은 구원의 확신과 말씀의 원리와 자신과 훈련이 쌓였는데도 불구하고 끊어지지 아니한다. 자기 제한 속에 갇히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다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3.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령충만이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은 지속형이다. 계속 성령의 능력을 받으라는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순절 성령체험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모여서 기도할때마다 계속 충만을 받았다. 우리 교회가 받아야할 응답이다.

(1) 주님은 완전하신 분이므로 불신앙, 염려를 완전히 버리고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적당히 신뢰할 분이면 적당히 신뢰를 하겠는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완전하시므로 우리의 생을 드려야한다. 우리의 생을 드리면 그 모든 것을 보장하신다.

요즘은 혼자 사는 것도 무서운 시대이다.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간단한 방법은 성령충만을 통해서 천군천사의 보호를 받는 것. 이 비밀은 인간의 오감으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으나 실제는 엄청난 것이다. 영적인 상태가 중요하다. 영적인 상태가 이상하면 이상한 사람이 붙고 이상하게 사고를 당하게 된다. 내 의지와 전혀 관계가 없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성령충만 하고 언약이 분명하면 내가 가는 곳마다 나를 도울 사람 구원받을 사람이 붙는다. 우리가 이런 축복을 받아야 한다.

(2) 주님이 완전히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3) 기도로써 주님과 항상 동행하므로 나태, 육신적 생각, 야심, 인본주의, 신비주의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4) 지속적인 기도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해야 한다(2:1-10, 41-47)

(5) 죄는 즉시 회개하여 버려야 한다. 죄의 습관과 성령님에 방해되는 모든 것은 정리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4. 성령 충만의 결과는 어떠한가?

(1) 2:5-9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역사. 3:1-12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스데반이 대제사장과 많은 군중 앞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담대히 선포. 7:55-56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 눈이 멀어 피장시몬의 집에서 금식하며 있을 때 하나님이 아나니아를 보내셔서 바울을 위해서 기도를 했을 때 바울이 다시 보게 되었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 9:17-19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성령충만의 결과는 엄청나다. 살아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1%라면, 내가 할수 없는 것이 99프로가 넘는데 성령님이 개입하시면 나를 인도하시고 능력주신다.

(2) 성령충만을 지속하면 그 사람의 인격 속에서 열매가 나온다. 하나님이 주시는 내적인 은혜가 세계를 뒤바꾸는 큰 힘이다.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