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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현장 보고) 힌디어와 페르시아어 성경번역선교사, 헨리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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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틴은 영국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켐브리지의 수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브레이너드의 희생적인 선교사역에 큰 자극을 받고 캐리의 인도사역자 모집에 적극 응하게 되어 해외선교를 인생의 유일한 목표로 삼게 되었습니다. 마틴은 매일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기도에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힘쓰기 위하여 마틴은 먼저 자아를 깨뜨리는 일부터 하였는데, 독신생활 역시 자신을 깨뜨리는 한 가지 방편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결혼의 안락한 생활을 원하는 모든 욕망으로부터의 해방”에 감사를 드렸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많이 일할 수 있는 독신생활”을 선택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동인도회사의 방해가 속에서 아무런 말썽 없이 인도에 선교사로 들어오는 길은 동인도회사의 전속 목사가 되어 들어오는 것뿐이었습니다. 1805년 영국 국교회 사제로 서품을 받고, 동인도회사의 전속목사로 임명받은 그는 1806년 인도에 도착하였습니다. 윌리엄 캐리와 세람포 선교사들은 마틴의 재능을 알고 성경번역 사역을 권유하였습니다. 동인도회사 직원과 그 가족 목회를 하면서도 마틴의 관심은 인도선교였습니다. 그는 신약성경을 수백만의 아시아인들이 읽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4년간 군대에 종군하여 복음을 전하면서 학교를 세우고, 동시에 신약성경을 힌디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1810년 중앙아시아의 열사의 기후를 이겨내지 못한 그는 힌디어 신약성경 출판을 앞두고 병이 나 치료를 하게 되었고, 이후 페르시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페르시아어 성경번역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1812년 건강이 다시 악화된 그는 영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소아시아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 쓴 그대로 인도를 위해 자신을 불태운 선교사로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1806년 인도에 도착하여 1812년 죽음에 이르기까지 매우 짧은 기간 동안만 사역했으나,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한 선교사 중 최고의 성경번역가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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