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현장 보고) 칼라바르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한 ‘백인 어머니’ 메리 슬레서

by 안젤라 posted May 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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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현장 보고) 칼라바르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한 ‘백인 어머니’ 메리 슬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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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슬레서는 스코트랜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로 가족들을 괴롭혔고 생계는 어머니가 맡아야 했습니다. 메리는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았고 면직공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공장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시간에 열심히 공부를 이어나갔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선교에 많은 관심을 가져 어머니는 선교사 보고서를 매주 읽어주었고 메리는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였습니다. 메리의 어머니는 아들 존이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메리가 25살 일때, 남동생 존이 결핵으로 죽게 되고 선교지에서 리빙스턴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리빙스턴 선교사의 삶에 많은 감명을 받았던 메리는 그가 하는 선교 사역을 누가 이어 갈 것인지, 누가 원주민들을 구원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다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메리는 1876년 파송을 받고 서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로 가게 되었습니다. 원주민들은 미신, 잔인한 부족 관습에 빠져 복음의 메시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특히 쌍둥이가 태어나면 악한 영의 저주 라고 생각하고 부모와 아기들을 죽이거나 부족에서 내쫓았습니다. 메리는 부족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쌍둥이 아기들과 엄마들을 탈출시켜 주었습니다. 그 노력을 통해 끔찍한 관습이 중단되게 되었습니다.

 

메리는 더욱 용기를 내 오지 오코용으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미 몇몇 선교사들이 죽은 지역이었고 독신 여성 선교사가 혼자 들어가 사역할 곳이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어 두려움을 접었습니다. 그녀의 용기에 감명 받은 오코용 왕은 선교 개척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25년간 학교와 의료 시설을 열어 그곳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또한 1892년 최초의 오코용 부영사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분쟁거리가 생기면 메리에게 달려왔고 그녀는 현명하고 지혜롭게 재판을 진행하였습니다. 메리는 왕과 정부 관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었으나 일반 사람들과 함께 아주 소박한 삶을 살았습니다.

 

한때 그녀를 사랑한 한 선교사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메리가 말라리아에 걸려 아플 때 간호를 해준 그에게 사랑을 느꼈지만 결혼을 이유로 사역을 멈춰야 할 상황에 놓이자 메리는 오랜 고민 끝에 결혼을 포기하였습니다.

 

55세 때 메리는 또다시 선교지를 옮겨 10년간 교회를 짓고 학교를 세우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67세가 되던 1915년 그녀는 진흙 오두막집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