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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일사각오(一死覺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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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수 목사


  새 찬송가 491장(통합 543장) 의 제목이자 기독교 영화인 “저 높은 곳을 향하여”의 주인공인 주기철(朱基徹) 목사(1897~1944)는 경상남도 창원시가 배출한 위대한 목회자이자 순교자였고, 민족 운동가였다. 그는 장로교 목사로 마산 문창교회에서 목회하는 등 목회자로 살았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식민정책에 반대하고 싸웠던 민족 운동가였다.
  주기철 목사는 1897년 11월 25일 경상남도 창원군 웅천면(熊川面) 북부리(北部里)에서 주현성(朱炫聲) 장로와 조재선(曺在善) 여사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다. 그는 8세 때인 1906년 고향 웅천의 개통학교(開通學校)에 입학하여 7년간 수학한다. 이때부터 주기철은 신식교육을 접하게 되었고, 민족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그 후 전국을 순회하며 계몽강연을 하던 춘원 이광수(李光洙)와의 만남을 통해 영향을 받고 신교육과 서양문화, 특히 민족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신앙과 민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1913년 정주로 가서 오산학교에 입학한다. 당시 정주, 선천, 안악 그리고 평양은 민족 교육의 중심지였는데, 정주 오산학교는 그 대표적인 학교였다. 이곳에서 주기철은 민족의 지도자 조만식(註: 오산학교 교사)과 이승훈(註: 오산학교 설립자)으로부터 신앙, 애국 그리고 민족정신을 배우고 이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1916년 3월 오산학교를 졸업한 그는 1915년에 설립된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안질로 시력이 약해져 수학하기 어려워지자 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웅천으로 돌아온 그는 약 4년 반 동안 실의와 좌절의 날들을 보낸다.
20세가 되던 1917년에는 김해 출신 안갑수(安甲守)와 결혼하였고 후에 5남 1녀를 두게 된다.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그 정신은 웅천에 까지 파급되었고, 주기철은 ‘웅천 20인 지도부’의 일원으로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는 지명수배를 받고 처가로 도피했으나 체포되어 헌병대에 연행되었다가 석방된다. 그의 사촌이자 오산학교 동창인 주기용이 웅동면 계광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독립운동에 깊이 관여하여 1년 6개월의 형(刑)를 살았는데, 주기철 또한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연희 전문학교를 중퇴하고 웅천에서 칩거하던 주기철은 마산 문창교회에서 열린 김익두 목사의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목회자의 길을 결심한다.
1922년 3월에는 평양의 장로회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925년 9월 졸업하여 부산 초량교회, 마산 문창교회를 거쳐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목회하였다.
주기철은 마산 문창교회에서 시무할 당시인 1933년 5월에 부인 안갑수와 사별하였고, 2년 후인 1935년 오정모(吳貞模)와 재혼하였다.
1935년 이후 신사참배(神祀參拜)가 강요되었을 때 이를 반대하여 1938년 2월 제1차 검속(檢束)이후 약 6년간 옥중에서 투쟁하였고, 1944년 4월 21일 밤 9시 30분경 47세를 일기로 일본의 옥중에서 순교하게 된다. 그 후 안이숙 사모(註: ‘죽으면 죽으리라’ 저자)의 간증에 의하면 일본인이 독극물 주사를 투여해서 타살을 했다고 전해진다.
  일제는 전쟁 정책 수행을 위한 ‘국민정신 총동원’ 운동의 일환으로 1935년부터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는데, 주기철은 신사참배는 기독교 신앙에 위배 된다고 보아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하였다.
 일제는 1925년 조선에서의 신사제도의 총 본산인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서울 남산에 건립하고 전국 각처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였다.
 1936년부터는 기독교회에도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해 동방요배(東方腰拜), 일본 국기게양, 황국신민서사의 제창 등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에 한국의 기독교회는 처음에는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탄압이 심화되면서 변절하기에 이르렀다. 천주교는 처음에 신사참배를 반대하였으나 1936년 5월에 이를 수용하였고, 감리교는 1938년 9월에 심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국민의례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였다. 장로교회 또한 회유와 탄압을 받아 1938년 9월 10일 ‘평양 서문 밖 교회’에서 제 27차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개최되었을 때 일제의 강압에 의해 불법적으로 신사참배를 가결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주기철을 신사참배는 기독교 교리에 위배 된다고 보아 끝까지 반대하고 저항하였다. 이 일로 주기철은 평양 산정현 교회를 시무할 때인 1938년 2월 이후 네 차례 투옥되는 등 일제의 강요에 맞서 투쟁한다. 네 차례에 걸쳐 구속된 기간은 모두 5년 4개월이 되는데 1944년 4월 13일, 네 번째로 투옥 된지 3년 8개월이 지났을 때 그의 몸은 극도로 쇠잔해졌고, 병고와 심한 고문으로 건강을 잃고 병감(病監)으로 옯겨지게 된다.
  이때쯤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부인에게 쓴 유언장에는 “아무래도 여드레 후에는 소천(召天) 될 것 같습니다. 미리 들어둔 생명보험금 200원을 타게 되면 만내아들 주광조에게 공부를 시키십시오. 어머님께는 봉양 잘해 드리고....” 어머님께는 너무 죄송합니다.“
 4월 20일 부인 오정모 사모와 마지막 대면했을 때 “내 하나님 앞에 가면 조선교회를 위해 기도하오리다” 라는 말을 남긴 그는 그 이튿날 “내 영혼의 하나님이여,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남기고 밤9시 30분경 47세를 일기로 진달래꽃이 핀 봄에 눈을 감았다.
  천주교와 감리교, 장로교가 이렇게 부끄러운 신사참배를 가결했을 때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킨 교파가 침례교와 성결교와 구세군이다. 이 세 교파는 일제에 비협조적이라 하여 1944년 교단이 해체(解體)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특히 침례교는 당시 ‘동아기독교’ 혹은 ‘동아 기독대’라는 교단 명칭을 사용했는데 학생들이 학교에 가면 신사참배나 동방요배를 해야 했기 때문에 부모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또한 ‘동아 기독대’라는 이름이 일본 천황에 대해 저항하는 의미가 있다하여 원래대로 ‘동아기독교’로 바꾸기도 한다.

  주기철목사가 네 차례나 구속과 석방을 거듭하는 동안 평양노회는 일제 강압에 못 이겨 주기철 목사를 면직시켰고, 산정현 교회는 폐쇄되었다. 그 후 1983년 장로회 신학대학교 교정에는 순교자 주기철 목사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를 면직시킨 장로교단은 교계 앞에 공식적인 사과나 회개가 없다.
 회개가 없는 구원은 없다. 구원에는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회개가 없는 용서도 없다. 용서는 하되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중세시대 태양신을 숭배하던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312년 스스로 기독교로 개종하고 313년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하여 수많은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나 회개 없이 교회로 몰려와 그때부터 기독교는 타락하게 된다. 콘스탄틴 황제도 죽을 때까지 세례(혹은 침례)도 받지 않고 버틴 것을 보면 그가 순수하게 개종했다기 보다는 정치적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주기철 목사에게 ‘건국공로국민장’이 수여되었고 1968년 국립묘지에 가묘가 조성되었으며 실제 묘소는 평양에 쓰여 졌고 경남 창원시 진해구 용천동로 174에는 항일 운동가 주기철 목사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주기철 목사에게는 이런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주기철이 오산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 그는 고당 조만식 선생의 제자였다. 이때 그는 나라사랑과 민족정신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후에 주기철이 목사가 되어 목회할 때에 조만식 선생이 장로로 그 교회를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 조만식 장로가 예배시간에 지각을 하게 된다. 그때 주기철 목사는 조만식 장로를 예배가 끝날 때까지 예배당 뒤에 서있게 하는 벌을 주었다고 한다. 참으로 그 선생의 그 제자이다.
주기철 목사가 순교를 각오했을 때 쓴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시가 전해진다.
             “주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도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 이렇게 날 위해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을 무서워 하리요“
  주기철은 건실한 장로교 목사였고, 저명한 설교가였다. 동시에 그는 신사 참배에 대한 투쟁과 이로 인한 희생의 대표적 인물로 신사 참배 반대의 상징적 존재였다. 한국교회가 신사 참배의 폭풍아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처음부터 단호한 거부입장을 표명하여 신앙을 지켰고, 이를 통해 기독교인의 귀감이 되었다. 그는 순교 전 이 찬송을 자주 불렀다고 한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다시금 기도하오니 내주여 인도 하소서“

 그는 진달래꽃이 필 무렵 이 땅을 떠났다. 그래서 진달래꽃 필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다. 언젠가 진달래꽃이 다시 필 때 무덤을 박차고 부활하겠지!.........“
                                  ☆ ☆ ☆ ☆ ☆ ☆ ☆
☆눅23:33, 34
  骸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十字架에 못 박고......“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赦하여 주옵소서. 自己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행7: 59, 60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主예수여 내 靈魂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主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마5:10, 12
  義을 爲하여 迫害를 받은 者는 福이 있나니 天國이 그들의 것임이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賞이 큼이라. 너희 前에 있던 先知者들도 이같이 迫害하였느니라.

                                            - 率 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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